전시 서문

위대한 작품의 초판본은 매우 비싼 값에 팔린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존재하던 물건을 공유하며 그것의 위대함에 대해 열성적으로 설득한다. 도달할 수 없다는 과거의 특수성은 원본이 갖는 중요한 맥락적 가치를 설명한다. 우리는 그 원본을 정체성이라 여기기도 한다. 예컨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어렸을 적 좋아하던 노래를 들으며 감상에 젖거나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일기장을 들춰보며 추억을 회상하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디서부터 우리였을까? 만약, 닿을 수 있는 기억의 가장 끝에 닿았다면 그곳을 진정한 우리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스스로를 정의하기 위해 원본으로 향했다. 그곳이 우리의 정체성이라 믿었기 때문에. 가장 순수했던 처음의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습득했다. 처음으로 싫어한 것이 생기거나, 좋아하는 것이 생겼다. 그렇게 원본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더 이상 처음에 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정체성은 원본에 있지 않다. 우리의 기억이 가닿는 끝에서부터 우리는 언제나 우리였다. 끝없는 기억을 따라가다보면 원본에는 다가갈 수 있겠지만 정체성에 다가가는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흘러간다. 3년 전에 마시기 시작한 커피와 작년부터 좋아한 가수의 노래 모두 우리다. 과일맛 음료수만 마시던 우리와 쓴맛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의 정체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시는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을 초初, 핵核, 심心으로 표현한다. ‘초’는 무언가 태동하는 가장 원초적인 상태를 포착한다. ‘핵’은 정체성을 이루는 변하지 않는 중심을 의미하며, ‘심’은 우리에게서 발현하는 정체성 그 자체다. 세 단어는 처음,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가능성과 자아를 품으며 개인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이정표가 되어준다. 전시는 초, 핵, 심이라는 개념으로 우리가 탄생한 순간부터 자아가 구성되기 시작한 순간, 그리고 그 위에서 다시 한 번 개인의 정체성을 찾기를 제안한다.